The Korea Daily

새해증후군치유해준탈­북청소년들

- 기자의눈

1월이 다 끝나간다. 부끄러운 이야 기지만 아직 제대로 된 새해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. 굳이 이유를 찾자면 기분탓이다.

2013년의 시작은 생각했던 것만 큼 산뜻하지 않았고, 신문 속 매일 반복되는 '희망'이란 단어는 부담 으로 다가왔다. 뱀띠해 첫 한인 신 생아의 꿈틀거림, 올해는 꼭 시집가 고 싶다는 주위 사람들의 들뜬 다짐 은 무언가를 생각해내야 한다는 조 바심만 키웠다. 이 기분을 설명할 형용사를 찾아보자면 모호하다, 뿌 옇다, 두루뭉술하다 등이 적합할 것 같다.

새해 증후군은 물음표만 띄웠다. 12월31일과 1월1일, 새해라는 말 때 문에 하루 하루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진 않은가? 조건 없는 희망의 끝 은무엇인가? 너도나도계획이란카 테고리에매인몸이돼야­하는가? 머 리를 짜내고 짜내봐도 별 감흥이 없 다. 정말 이대로 1년을 살아도 괜찮 은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새벽 3~4 시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들이 며칠간이어졌다.

그런 날들이 계속되던 지난 24일, LA를 찾아온 탈북 고교생 8명을 만 났다. 오멜버니 앤 마이어스 로펌이 서울 사무소 개소식 비용을 아껴 초 청한 학생들이다. 이들은 고교생이 라해도나이가들쑥날쑥­하고, 탈북 시기도 제각각이다. 한국에 정착한 지 짧게는 1년, 길게는 7년 된 탈북 고교생들은 처음 밟는 미국땅에 감 동한 듯 보였다. 숨기려고 애쓰지만 한 두마디 툭툭 튀어나오는 북한 말 투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사람도 없 고, 왜탈북했느냐고꼬치꼬­치묻는 사람도 없는 곳. 합법적으로, 당당 하게 국경을 넘고 편견 없이 사람을 만나는 그 모든 경험이 이들에겐 새 롭게느껴졌나보다.

만남은 충격적이었다. 흔히 탈북 자를 생각할 때 떠올리는 암울함은 그곳에 없었다. 너무 당연하게 행복 을 논하고 , 기쁨을표현하는 이들이 너무도 신기해 함께 있는 내내 가슴 이 아플 정도였다. 겨울방학이니까 갈색으로 한번 염색해보고 싶었다 는A, 세상에서제일맛있는음­식은 삼겹살이라며 쌈 싸는 법을 설명해 주던 B , 미국 사람들은 왜 겨울에 반소매를 입는지 모르겠다며 감기 걱정까지 하던 C . 아직북한에가족 을 남겨두고 국경을 넘은 4명은 카 메라를 피하면서도 " 우린얼굴이너 무 잘나서 찍으면 안 돼요 " 라며 미 소를잃지않았다. 수많은 '왜?'가 머리를 어지럽혔 다. 부모와 생이별한 A가 웃고 있 는데 ' 막막하다 '라는 말을 하고 있 는내상황이 코미디처럼 느껴졌다. 새해 계획 운운하면서도 살아있다 는 것에 감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웃겼다 . 처음 취재를 결정했을 때, 이들은 그저 일상에 겹친 또 다른 부 담에지나지않았다. 해야할 말, 물어볼수없는말, 신 변 보호 등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 지 고민을 거듭했었다. 모든 것은 기우였다. 이들과 눈을 맞추고 , 재 미없는 농담에 서로 웃어주며 보폭 을 맞출 때마다 위로받았다. 제대로 된치유였다. 아직도 새해 계획은 정하지 못 했 다. 새해 증후군을 극복했다고도 말 할 수 없다. 하지만, 괜찮다. 이들 의 얼굴에서 희망을 봤다 . 조건없는 희망의끝은알수없지만­적어도그 안에 있는 동안엔 웃을 수 있다고. 내일일은내일걱정해야­겠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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구혜영 사회팀기자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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