The Korea Daily

언어인플레시대의신문

-

신문사엔 편집기자라는 게 있다. 기 사의 경중을 따져 제목을 달고 지면 에 배치하는일을하는기자­들이다 . 20여년 전 처음 편집을 배울 때였 다. 어렵게 제목을 뽑아 가면 선배 는 붉은 사인펜으로 사정없이 죽죽 긋곤 했다. 가장 많이 지적 받았던 말이 ' 최대 '' 최초 ' 같은 과장성 단 어였다. 워낙 언어 인플레가 심하다 보니 조금만 앞서가도 ' 최첨단 '이고 남 보다 약간만 빨라도 '초고속'이니 조심해야한다고했다. '~을정복했 다'는 말은 ' 약간 알게 됐다 '는 정 도로 받아들여라 , '획기적'은 아직 검증이 되지 않았다는 말이고 '국내 최초 '라고 하면 외국것을처음으로 베꼈다고 생각하면 정확하다는 말 도 들었다. 당시에는 정말 그럴까 싶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실이 그렇다는것을알게됐다.

' 철퇴 '니 ' 혈안 ' 같은 제목도 어 김없이야단을맞았다 . 철퇴란단 한 방에 몸을 쳐서 죽이는 무서운 무기 다. 그런것을아무렇지도않­게써서 되겠느냐는 것이었다. ' 혈안 '도 눈 이 벌겋다는 것을 한자로 옮긴 것으 로신문에쓸말은아니라­고했다.

그 선배는 시인이었다. 아름답고 고운 우리말을 골라 쓰는 것은 기자 의 의무이자 책임이어야 한다는 것 이지론이었다.

이전 편집기자들 중에는 이런 생 각을가진이들이적지않­았다. 하지 만 그들의 분투에도 언어 인플레는 잡지 못 했고 오히려 내성만 키워 점 점더강도 높은단어로독자를 유혹 해야(?) 하는시대가되고말았다.

기름을 끼얹은 것이 인터넷이다. 포털이나 한국 언론사 웹사이트에 한번이라도 접속해 본 사람은 얼마 나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단어들이 난무하는지다안다. 군소언론은물 론 내로라하는 메이저 언론도 차이 가 없다. 얼마 전 이런 세태를 꼬집 는 재미있는 웹사이트를 하나 발견 했다. '충격 고로케( hot . coroke . net) '라는 사이트인데 어느 언론사 가가장많은 낚시성 제목을 달고있 는지를보여주는곳이었­다.

거기서 낚시성 제목의 대표격으 로 뽑아놓은 단어는 '충격' '경악' ' 헉! ' '알고 보니' '숨막히는' '이 럴 수가' 같은 것들이었다. ' 깜짝 ' ' 발칵 '' 앗! '' 폭탄 ' '대박' '기적 의' ' 결국 ' 같은 단어도 조심해야 한다.

이들 단어의 뜻풀이도 특이했다 . 일례로 '충격'이라는 단어를 보자. 원래 뜻은 '물체에 급격히 가해지는 힘 ' 또는 ' 슬픈 일이나 뜻밖의 사건 따위로 마음에 받은 심한 자극이나 영향 '을 말한다. 하지만 이 사이트 에서의 풀이는 전혀 달랐다 . '부디 꼭 클릭해 달라고 독자에게 간곡하 게 부탁하거나 독자를 낚아보기 위 해 기사 제목에 덧붙이는 일종의 주 문'이라는 것이다. 이를 보면서 처 음엔뜨끔했고나중엔부­끄러웠다. 인터넷 기사는 내용과 수준에 상 관없이 클릭 수에 따라 영향력도 생 기고 수익도 늘어난다 . 그러자면 어 떻게든 독자를 자극하고 호기심을 자아내서 읽게 만들어야 한다. 종이 신문도 크게 다르지 않다. 요즘 언 론이어쩔수없이 '제목장사'에 매 달리는이유다 . 하지만 제목에도 지켜야할 선이 있다. 세월이 달라져멋과 맛까지는 못낸다 해도 거짓과 억지는 없어야 한다. 기사 내용과 전혀 다른 제목 으로 독자를 끌려는 것은 과장과 허 위를 넘어 사기요 기만이며 독자를 우롱하는것이기때문이­다. 매체의 춘추전국 시대다. 그 속에 서 옥석을 가리는 일은 독자의 몫이 겠지만 결국 언론의 수준을 결정짓 는 것은 영혼을 팔면서까지 기사를 팔지는 않겠다는 저널리즘 정신이 다. 치열한 미디어 전쟁시대에 여전 히 그런 고민으로 기사를 쓰고 제목 을뽑는기자들은과연얼­마나될까.

 ??  ?? 이종호 편집팀장
이종호 편집팀장

Newspapers in Korean

Newspapers from United States